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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학

커피 가공 프로세스가 미생물 발효에 미치는 영향과 맛의 상관관계

by golog 2025. 5. 15.

커피학

커피 가공 방식과 발효의 기초 이해

커피 가공은 수확된 커피 체리에서 씨앗인 생두를 추출하는 일련의 후처리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체리의 과육, 점액질, 껍질 등을 제거하며, 이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발효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커피 가공법은 크게 워시드(Washed), 내추럴(Natural), 허니(Honey) 방식으로 구분되며, 최근에는 아네어로빅(Anaerobic), 카보닉 맥세레이션(Carbonic Maceration), 라보릭(Lactic) 등의 실험적 발효 기반의 가공법도 활발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방식에서 핵심은 미생물, 특히 효모와 박테리아의 작용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입니다. 발효는 미생물이 유기물(당류 등)을 분해하면서 에탄올, 유기산, 향기 화합물 등을 생성하는 과정이며, 커피에서는 점액질(Mucilage)에 존재하는 당분을 미생물이 대사하면서 진행됩니다. 체리 내 수분, 온도, 산소 유무, pH 등 환경 조건에 따라 어떤 미생물이 우세하게 활동하느냐가 결정되고, 이에 따라 산미의 구조, 단맛의 형태, 향미의 복잡성, 바디감 등 여러 관능적 특성이 달라집니다. 즉, 커피의 향미는 수확 이후 가공 단계에서 미생물 발효라는 생물학적 스크립트를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발효 과정은 오래전부터 무의식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최근에는 과학적 제어와 분석을 통해 발효의 메커니즘이 명확히 해석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위생 처리 과정이 아니라, 생두 속 향미 성분을 창조하고 강화하는 생물학적 조형 과정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커피의 품질과 독창성은 수확 후 어떤 방식의 가공을 거치고, 그 과정에서 어떤 미생물이 지배적인 역할을 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고도화된 변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커피 가공 프로세스가 미생물 발효에 미치는 영향과 맛의 상관관계

커피 가공 방식은 미생물의 활동 환경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이며, 이로 인해 발효 패턴과 향미 화합물의 종류가 크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워시드 가공에서는 커피 체리의 과육을 완전히 제거하고, 점액질만 남긴 상태에서 물속에 담가 호기성 미생물과 일부 혐기성 박테리아가 공존하는 조건에서 발효가 이루어집니다. 이때 가장 활발히 작용하는 미생물은 **효모(Saccharomyces spp., Candida spp.)와 젖산균(Lactobacillus spp.)**이며, 이들은 점액질 내 당을 분해해 젖산, 아세트산, 글루콘산 등 다양한 유기산과 향기 성분을 생성합니다. 결과적으로 워시드 커피는 깨끗하고 밝은 산미, 선명한 향, 클린컵이라는 특징을 가집니다. 반면 내추럴 가공은 커피 체리를 통째로 건조시키기 때문에 과육, 점액질, 껍질까지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에서 미생물 발효가 이루어집니다. 이때는 공기 노출이 많고, 당분이 풍부한 조건에서 과일 발효형 효모와 아세트산균(Acetobacter spp.)이 주요하게 작용하며, 에탄올, 에스테르류, 고분자 당류 등이 다량 생성됩니다. 이로 인해 내추럴 커피는 묵직한 바디, 복합적인 과일향, 때로는 와인 같은 톤을 가지며, 과발효 시에는 과숙향, 발효취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허니 가공은 두 방식의 중간 형태로, 점액질의 제거 정도에 따라 옐로우, 레드, 블랙 허니 등으로 구분됩니다. 이 경우에는 호기성과 혐기성이 모두 존재할 수 있는 불균형 환경으로, 다양한 미생물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부드러운 산미와 단맛이 조화를 이루는 프로파일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서의 주요 미생물은 발효 초기에는 효모가, 중기에는 젖산균과 아세트산균이, 후기에는 바실러스 계열이 우세해지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가공 프로세스는 단순한 수분 제거 과정이 아니라, 어떤 미생물이 주도권을 쥐고 발효 과정을 지배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이 환경 변화는 유기산 농도, 휘발성 화합물(에스테르, 케톤, 알코올), 페놀류의 비율을 조절하며, 이는 커피의 산미 구조, 향미의 복합성, 후미의 길이 등에서 직접적으로 감지됩니다.

효모와 박테리아의 작용 메커니즘

커피 발효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미생물은 효모와 박테리아입니다. 효모는 주로 당을 알코올로 전환하며 동시에 향기 물질을 생성하는 미생물이고, 박테리아는 주로 유기산을 생성하거나 pH를 조절하면서 향미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합니다. 이들이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활동하느냐에 따라 커피의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대표적인 효모인 Saccharomyces cerevisiae는 점액질 내 포도당, 과당을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로 전환하며, 이 과정에서 에스테르류(isoamyl acetate, ethyl hexanoate), 알코올류, 고분자 다당류 등을 생성합니다. 이러한 화합물은 플로럴, 과일향, 벌꿀향 등을 담당하는 향기 성분으로 알려져 있으며, 에스프레소나 필터 커피에서 ‘복합적인 향미’로 인식됩니다. 한편, 박테리아의 대표 주자인 **Lactobacillus spp.**는 당을 젖산으로 전환하며, 이로 인해 부드러운 산미, 낮은 pH 환경, 세균 억제 효과가 발생합니다. 또한 **Acetobacter spp.**는 알코올을 아세트산으로 산화시켜, 더 밝고 톡 쏘는 산미와 시트러스 계열의 향미를 만들어냅니다. 이들은 함께 작용하면서 미묘한 산미 밸런스를 형성하고, 감칠맛(umami)과 함께 후미에 여운을 남기는 커피를 만들어냅니다. 미생물의 조합과 시간에 따라 생두 내 클로로겐산, 카페산, 타닌 등 페놀계 물질의 변형도 이루어지며, 이는 로스팅 이후 산 구조의 명료도, 바디감의 경중, 텍스처의 질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미생물 종류에 따라 생성되는 방향족 화합물의 종류는 달라지며, 이는 로스팅 시 휘발화되는 향기 분포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결국 커피 향미는 ‘무엇을 키웠느냐’보다는 ‘어떻게 발효되었느냐’가 중요한 시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네어로빅 발효와 실험적 가공의 진화

최근 커피 산업에서는 단순한 워시드, 내추럴, 허니를 넘어 발효 자체를 ‘디자인’하는 새로운 가공 방식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네어로빅(Anaerobic, 혐기성) 발효입니다. 이는 커피 체리 또는 파치먼트를 밀폐 용기 안에서 산소 없이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미생물의 종류와 활동속도, 대사 경로가 기존 방식과 확연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산소가 차단된 환경에서는 호기성 미생물의 활동이 억제되고, 효모와 젖산균, 일부 특수한 혐기성 박테리아가 주도권을 잡게 되며, 이는 기존보다 훨씬 강렬하고 명확한 산미, 복잡한 향미 레이어, 와인 같은 미감을 형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휘발성 화합물은 주로 젖산, 시트르산, 에틸락테이트, 메틸부탄올, 피루브산 등이며, 이들은 일반적인 커피 향미와는 다른 독특한 캐릭터를 제공합니다. 또한 **카보닉 맥세레이션(Carbonic Maceration)**은 와인에서 유래한 방식으로, 이산화탄소 분위기에서 커피 체리를 통째로 발효시키는 고급 기법입니다. 이 경우, 체리 내부에서 **세포 내 발효(intracellular fermentation)**가 진행되며, 과일향, 자두, 체리, 발사믹 노트 등 예술적 수준의 향미가 생성되기도 합니다. 이 방식은 고가의 마이크로랏에서 주로 활용되며, 향미 창조의 극단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러한 실험적 방식은 여전히 미생물 제어, 발효 시간, 온도 프로파일, pH 조절 등 여러 요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과학적 기반과 경험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이 기술을 정밀하게 다룰 수 있다면, 기존 품종이나 산지의 한계를 뛰어넘는 향미 설계도 가능해지며, 커피의 세계는 더욱 다채롭고 진화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발효와 향미의 조화: 커피 가공의 미래

이제 커피 가공은 단지 체리를 말리는 수단이 아니라, 향미를 재설계하는 생물화학적 플랫폼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미생물 발효를 정밀하게 조절함으로써 향미를 극대화할 수 있고, 이는 커피의 품질을 넘어서 상품성, 희소성, 그리고 소비자 감각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제어권을 확보하게 합니다. 앞으로의 커피 산업은 ‘품종 + 테루아 + 발효 디자인’이라는 삼각 구도를 중심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일부 농장은 자체 미생물 군집을 배양해 사용하거나, 외부 유산균, 효모 스타터를 도입해 향미의 일관성과 품질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와인, 치즈, 맥주 등 다른 발효 식품 산업과 동일한 길을 걷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향후에는 AI 기반 발효 예측, 실시간 pH/온도 센서 시스템, 자동화 발효 장치 등이 도입되어, 커피 가공의 정확도와 재현성이 더욱 향상될 것입니다. 발효는 커피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마지막 퍼즐입니다. 재배와 수확을 아무리 정성껏 해도, 발효 과정이 어긋나면 그 노력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발효를 제대로 이해하고 설계한다면, 보통의 커피도 비범하게 변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커피학이 ‘가공’에 주목하는 이유이며, 커피 향미가 생물과 환경, 그리고 인간의 선택이 만들어낸 복합적 산물임을 보여주는 가장 역동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